우리 아빠 이름이 Yulisaf Yunus인데 21년 동안 국가 회사에서 일했고 영원히 음악가인다고 말했다. 우리 아빠가 어렸을 때 학교 점을 알 좋은데 음악을 너무 좋기 때문에 고딩을 된 동안 가끔 결석했다. 우리 하라버지가 아빠한테 많이 화가나서 하라버지는 아빠의 언니한테 우리 아빠가 어떤 친구한테 소개해주고 국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다고 부탁했다. 그래서 아빠는 국가 회사에 둘어가면 하라버지는 아빠가 음악대해 잊어버릴 수 있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때도 아빠가 조용히 나잇 클럽에서 피아노나 기타를 쳤다. 재 여동생과 함께 아빠에게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계속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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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의 가족 사진. 우리 아빠가 밑에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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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빠 |
아빠가 아빠의 아이 하고나 엄마한테 화가난 번적이 없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아빠가 그냉 많이 조용했다. 재 학교 점은 재 여동생의 학교 점보다 더 낮아서 아빠가 나 한테 물어봤다.
" 아, 아카. 너 지금 충딩인데 왜 아직도 수학 못 하고 물리학도 안 잘 해서 왜 그래 ? 수학 안 좋아 ? ".
" 응, 아빠 처럼 이잖아. 아빠도 충딩 이었을 떄 수학도 안 잘했잖아. ".
그런 것을 들어서 아빠가 화가나대신에 많이 웃었다.
" 그래서 아카가 수학을 안 좋고 물리하고 안 좋으면 나중에 뭘 할거야 ? 뭘 좋을거야 ? ".
" 난 영어 말하기 너무 좋아서 나중에 영어 선생님을 될거나 난 노래도 잘 부르잖아. 난 가수도 되고싶어 ! ".
" 진짜 ? 그럼 지금 부터 아무거나 되고 싶으면 열심히 해 ! 아카가 수학을 하기 실어서잘 알아는데 고등 학교 졸업한 까지 좀 참아야 돼. 수학도 나중에 우리 생활에 필요하잖아. ".
그 문장을 간단하지만 지금 까지 아직도 기억한다. 역시 우리 아빠가 너무 멋있고 현명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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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살 아카랑 아빠 |
우리 가족은 아빠의 일때문에 자카르타에서 안 살아서 다른 대도시에서 살았다. 제가 태어난 부터 18세살 까지 그 대도시에서 살았는데 인도네시아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자카르타 에서 이동했다. 근데 아빠가 엄마와 여동생 함께 그 도시에서 아직 살고 있었다. 1년 동안 부모님과 여동생이 안 같이 살아서 좀 외로웠다. 두 번째 방학에 제가 집에 갔는데 부모님과 여동생이랑 만났는데 우리 여동생이 자카르타에서 구경하고 싶어서 엄마랑 자카르타에 갔다. 아빠가 여행을 가기 싫어서 저랑 집에서 살았다. 그 때 제가 진짜 아빠랑 헤어지고 싶지 않고 너무 보고싶어서 집에서 아빠랑 같이 요리하고 노래를 부렀다. 내 대학교 점은 나왔을 때 좋은 점을 다 나와서 아빠가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방학이 끝났을 떄 자카르타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 엄마랑 놀라게 한 결정을 만들었다. 엄마는 제가 너무 외롭다고 들어서 우리 가족은 자카르타에 이동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2009년에 자카르타에서 우리 같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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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우리 자카르타에 있는 집 사진을 패복으로 얼렸다. |
늦은 밤에 밖에서 기침을 많이 들어서 갑자기 아빠가 숨을 못 쉬었다고 말했는데 우리 의사 사촌한테 연락했다. 7사긴 동안 아빠가 병원에서 간호해 되었다. 그 때 저는 아빠가 삶 신호가 없어진다고 생각했고든요. 제가 신에게 아빠가 이 세상에 너무 피곤하고 쉬고싶으면 신은 아빠를 같이 살면 괜찮았다고 기도했다. 8시 아침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많이 울고 많이 슬프지만 아빠가 지금 평화게 산다.
지금 까지 친구한테서 아빠대해 얘기하고 있으면 울고 싶은데 계속 참아야 됀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친구랑 ' 아빠, 어디가 ? ' 프로그램을 봤을 때 제가 아빠랑 좋은 추억을 많이 기억했다. 아빠가 집에서 너무 사랑스럽고 착하고 현멍해서 아빠를 많이 보고 싶다. 근데 다 아빠의 충고를 지금 기억해야 한다.
아빠, 아빠가 지금 재 옆에 있으면 제가 아빠한테 많이 얘기하고 싶고든요. 아빠가 지금 재 옆에 못 오면 잘 알아는데 제 꿈에 얘기하면 안돼요, 아빠 ? 사랑한다, 아빠. 우리 다음에 제 꿈에 만납시다 ~~~
논산,2013년 12월 1일
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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