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5, 2013

그 한국 음식들을 먹어 봤어요 ?

차, 역시 아카야 .. 매일 음식대해 생각한다. 근데 우리가 어디든지 가면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나라 나 수도의 전통 음식 아닙니까 ? 그래서 지금 저는 한국에 있어서 제가 먹어 봤던 한국 음식대해 이야기한다.

보통 사람들이 김치를 알아는데 한국에 왔을때 실재로 다른 맜있는 한국 음식이 많다. 근데 이스람이니까 다 못 먹어봤는데 아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돼지 고기 없는 음식도 더 맛있다. 이 포스트에서 제가 5 위 맛있는 한국 음식을 소개한다.

1. 김밥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학교 버스에서 우리 선생님이 김밥을 줬다. 기숙사에 도작하자 방에사 너무 배고파서 김밥을 먹어봤다. 김밥은 일본의 스시 같은 것인 어떤 것을 달라면 잘 모른다. 김밥은 밥이며 야채하고 참지나 햄이나 계란을 김위에서 놓고 다음에 같이 굴려 되었다. 보통 한국인들이 집에서 아침 밥을 못 먹으면 학교나 회사에 가는 길에 김밥을 산다. 좀 편하고 또 싸서 사람들이 김밥을 너무 좋다. 한국에서 어디든지 김밥 가게 하고나 편의점에서 김밥을 쉽게 찾아서 그래서 김밥을 먹고 싶으면 그 장소에 오세요.

2. 불닭

2번 째 제일 맛있는 하국 음식은 불닭이라고 한다. 제 지난 방 친구, 김지혜, 가 저한테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어봤는데 매운 것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지혜가 불닭을 사준다고 말했다.


 처음에 먹었을 때 맵지 않지만 좀좀 먹으면 진짜 매웠다. 우리가 물을 많이 마셨고 요구르트도 마셨는데 아직도 매뭤다.맵긴 하는데 불닭이 너무 맛있어서 우리 먹었을 때 그만 둘 수 없다. 불닭은 닭고기며 떡하고 야채가 매운 양념이랑 비벼서 물도 놓았다. 이 음식은 치킨탕 같은 것인데 물 조금만 놓었다. 한국에서 닭고기가 돼지고기보다 좀 비싸서 닭요리 값이 도 비싼다. 불닭 1일분은 15.0000 - 20.000원인데 4-5 명이 먹을 수 있다. 우리 대학교에 있는 외국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불닭을 먹으면 스트레스를 푸를 수 있다. 한국에 오면 이 음식을 꼭 먹어봐야 죠 ! ;)

3. 안동 찜닭



찜닭은 실재로 불닭 같은 요리 인데 소스가 간장 하고 달콤한 간장을 놓아서 맛이 좀 달콤한다. 찜닭은 안동의 전통 음식인데 그래서 우리 대학교에 있는 문화 제험에서 친구들과 함꼐 찜닭을 요리해 봤다.

우리찜닭팀 ( 아사미, 아카, 발, 웬즈 )

우리 만든 찜닭

불닭 안에는 야채가 없지만 찜닭 안에는 당근 하고 감자를 놓았다. 우리가 찜닭을 만들었을 때 다양한 간장 소스를 썼다. 우리가 좀 찬 한국 간장이며 충국 단 간장하고 다른 양념을 같이 섞어서 닭고기 위에 부었다. 요리하는 시간이 15 ~20 분이다. 다른 장소에서 찜닭은 아직 안 먹어봤는데 개회가 있으면 한국 식당에서 찜닭을 먹어 볼거예요.

4. 갈비탕

한국에 살아 동안 저한테 이 음식이 제일 사치스러운 음식인데 소고기 갈비탕이니까 값이 비싼다. 수원 화성에서 이 음식을 먹어 봤다. 수원에서 갈비가 제일 유명하니까 우리가 수원 갈비를 먹어 볼 수 있어서 너무 행운이다. 



이 탕안에서 갈비뿐 아니라 면도 있었다. 국물이 맑고 갈비니까 좀 느끼한데 밥이랑 같이 먹으면 느끼한 맛이 없어졌다. 맛을 추가하고 싶으면 간장이나 고추 가루를 놓을 수 있고 김치랑 같이 먹으면 괜찮다.  저는 한국에 온지 거의 8개월 됐는데 아직도 김치 안 좋아서 탕안에서 김치를 안 놓었다. 그래도 내 갈비탕도 맛있다. 갈비를 너무 커서 어떻게 먹었다 ? 탁자 위에 마다 이모님이 가위를 준비했다. 그래서 먹은 전에 갈비에 있는 고기를 자를 수 있었다. 이 탕 값이가 10.000원 쯤인데 인분이 커서 이 탕을 먹으면 만족하질 겅예요. 수원 화성에 가면수원 갈비를 먹어 봅시다. 짱 !!

5. 길거리 음식


제친한 친구들은 우리 어디든지 가면 제가 떡볶이와 튀김을 먹기 좋았다. 떡볶이와 튀김이 길거이 음식인데 한국에서 어디든지 찾을 수 있다. 길거리 음식이 떡볶이와 튀김뿐 아니라 순대, 닭꼬치, 소시지, 감자 튀김, 파전, 붕오빵 등도 있다. 길거리 음식 값은 500원 부터 3000원 까지 인데 좀 싼다. 은행동, 대전에서 주말마다 사람들이 길거리 으식 가게 앞에서 줄지어섰다. 걸으면서 가족이랑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 너무 편하게 됐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쇼 떡분에 사람들이 길거리 음식을 알고 외국 여행자가 한국에 오면 가장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한국 길거리 음식이다. 어떤 가게들이 길거리에 있어서 좀 안 깨끗하긴 하는데 한번 두번 한국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도 됐다. 그래서 저랑 떡볶이 먹을래요 ? ^^


Sunday, December 1, 2013

아빠, 마냑에 아빠가 재 옆에 있으면 ....

요즘 생활이 좀 히들어서 가족을 많이 보고싶은데 지금 아빠를 가장 보고싶다. 그래서 지금 아빠대한 얘기하고 싶다. 지지난 주에 ( 11월 23일 ) 우리 아빠의 4년 사망 날인데 제가 인도네시에 없어서 아빠의 무덤에 못 방문한다. 어린 부터 아빠가 돌아간 까지 우리 사이가 너무 친하고 가까워서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이 마음이 파괴되었다. 너무 슬프다. 잠, 먼저 우리 아빠를 소개해줄거예요.

 우리 아빠 이름이 Yulisaf Yunus인데 21년 동안 국가 회사에서 일했고 영원히 음악가인다고 말했다. 우리 아빠가 어렸을 때 학교 점을 알 좋은데 음악을 너무 좋기 때문에 고딩을 된 동안 가끔 결석했다. 우리 하라버지가 아빠한테 많이 화가나서 하라버지는 아빠의 언니한테 우리 아빠가 어떤 친구한테 소개해주고 국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다고 부탁했다. 그래서 아빠는 국가 회사에 둘어가면 하라버지는 아빠가 음악대해 잊어버릴 수 있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때도 아빠가 조용히 나잇 클럽에서 피아노나 기타를 쳤다. 재 여동생과 함께 아빠에게서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계속 웃었다.

아빠의 가족 사진. 우리 아빠가 밑에 있어요
아빠가 아들을 소유하고 싶은데 제가 태어났을 때 아들이 아니라 딸이네요. 근데 우리 사이도 너무 친했다. 사진첩을 봤을 때 아빠랑 좋은 추억을 많이 기억했다. 아빠랑 축구를 하고 아빠가 피아노를 치었을 때 제가 아빠의 넓적다리에 앉아고 피아노를 같이 치었다.

우리 아빠

 아빠가 아빠의 아이 하고나 엄마한테 화가난 번적이 없었다. 그래서 문제가 있으면 아빠가 그냉 많이 조용했다. 재 학교 점은 재 여동생의 학교 점보다 더 낮아서 아빠가 나 한테 물어봤다.

                 " 아, 아카. 너 지금 충딩인데 왜 아직도 수학 못 하고 물리학도 안 잘 해서 왜 그래 ? 수학 안 좋아 ? ".
                 " 응, 아빠 처럼 이잖아. 아빠도 충딩 이었을 떄 수학도 안 잘했잖아. ".

그런 것을 들어서 아빠가 화가나대신에 많이 웃었다.

                 " 그래서 아카가 수학을 안 좋고 물리하고 안 좋으면 나중에 뭘 할거야 ? 뭘 좋을거야 ? ".

                " 난 영어 말하기 너무 좋아서 나중에 영어 선생님을 될거나 난 노래도 잘 부르잖아. 난 가수도 되고싶어 ! ".

                " 진짜 ? 그럼 지금 부터 아무거나 되고 싶으면 열심히 해 ! 아카가 수학을 하기 실어서잘 알아는데 고등 학교 졸업한 까지 좀 참아야 돼. 수학도 나중에 우리 생활에 필요하잖아. ".

그 문장을 간단하지만 지금 까지 아직도 기억한다. 역시 우리 아빠가 너무 멋있고 현명했군요 :)


2세살 아카랑 아빠

우리 가족은 아빠의 일때문에 자카르타에서 안 살아서 다른 대도시에서 살았다. 제가 태어난 부터 18세살 까지 그 대도시에서 살았는데 인도네시아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자카르타 에서 이동했다. 근데 아빠가 엄마와 여동생 함께 그 도시에서 아직 살고 있었다. 1년 동안 부모님과 여동생이 안 같이 살아서 좀 외로웠다. 두 번째 방학에 제가 집에 갔는데 부모님과 여동생이랑 만났는데 우리 여동생이 자카르타에서 구경하고 싶어서 엄마랑 자카르타에 갔다. 아빠가 여행을 가기 싫어서 저랑 집에서 살았다. 그 때 제가 진짜 아빠랑 헤어지고 싶지 않고 너무 보고싶어서 집에서 아빠랑 같이 요리하고 노래를 부렀다. 내 대학교 점은 나왔을 때 좋은 점을 다 나와서 아빠가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방학이 끝났을 떄 자카르타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우리 엄마랑 놀라게 한 결정을 만들었다. 엄마는 제가 너무 외롭다고 들어서 우리 가족은 자카르타에 이동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2009년에 자카르타에서 우리 같이 살았다.

아빠가 우리 자카르타에 있는 집 사진을 패복으로 얼렸다.
자카르타에서 2개월 동안 우리 같이 살았으나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2일 아빠가 돌아가셨전에 아빠가 피자를 사줬다. 다음 날에 제가 대학교에서 영롸를 만들 중인데 휴일이었으나 학교에 가야 한대요. 너무 싫고 게으렸지만 제가 학교에 갔다. 7시 밤에 집에 돌앙하서 아빠가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아빠한테 물어봤을 떄 아빠가 너무 추웠다고 대답했다. 그래, 비가 왔으니까 ....

늦은 밤에 밖에서 기침을 많이 들어서 갑자기 아빠가 숨을 못 쉬었다고 말했는데 우리 의사 사촌한테 연락했다. 7사긴 동안 아빠가 병원에서 간호해 되었다. 그 때 저는 아빠가 삶 신호가 없어진다고 생각했고든요. 제가 신에게 아빠가 이 세상에 너무 피곤하고 쉬고싶으면 신은 아빠를 같이 살면 괜찮았다고 기도했다. 8시 아침에 아빠가 돌아가셨다. 많이 울고 많이 슬프지만 아빠가 지금 평화게 산다.

지금 까지 친구한테서 아빠대해 얘기하고 있으면 울고 싶은데 계속 참아야 됀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친구랑 ' 아빠, 어디가 ? ' 프로그램을 봤을 때 제가 아빠랑 좋은 추억을 많이 기억했다. 아빠가 집에서 너무 사랑스럽고 착하고 현멍해서 아빠를 많이 보고 싶다. 근데 다 아빠의 충고를 지금 기억해야 한다.

아빠, 아빠가 지금 재 옆에 있으면 제가 아빠한테 많이 얘기하고 싶고든요. 아빠가 지금 재 옆에 못 오면 잘 알아는데 제 꿈에 얘기하면 안돼요, 아빠 ? 사랑한다, 아빠. 우리 다음에 제 꿈에 만납시다 ~~~


논산,2013년 12월 1일


아카